뉴욕한인성공회교회

6월 14일 밀알합창단 무료연주회

Posted in 1 by nychurch on May 31, 2009

2009년 6월 14일(주일) 저녁 7시
뉴욕한인성공회 성당에서
밀알합창단에서 주최하는 무료연주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의 추모글

Posted in 1 by nychurch on May 31, 2009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이 나라의 모든 국민들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마음 깊이 애도합니다.

지금 우리는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분함으로 그분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모든 제도가 사람의 사람다움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분의 신념과 노고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고인께서 겪고 있었을 외로움과 아픔을 멀찍이 떨어져 방관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한 인간을 몰아가 결국 죽음의 언덕에서 밀어 떨어뜨린 어둡고 거대한 세력들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언제나 죽음은 남겨질 사람들에게 새로운 몫을 선사합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는 시작이고, 보다 성숙한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출발이라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한다는 것은 순간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가 지녔던 바른 신념과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이어받아 사는 것입니다.

참 세상을 향한 그분의 소망이 남겨진 우리들의 삶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 이어져가기를 빌며,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평화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9. 5. 27

대 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in 1 by nychurch on May 25, 2009

뉴욕한인성공회 교회는 노 전대통령님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당분간 웹사이트의 색상을 검은색으로 유지함을 알려드립니다.

신임 보좌주교를 소개합니다.

Posted in 1 by nychurch on May 7, 2009

The Reverend Lawrence C. Provenzano


롱아일랜드 신임 주교로 선출되신 로렌스주교입니다.
9월에 승좌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대도를 부탁드립니다.

주교후보를 소개합니다.

Posted in 1 by nychurch on January 20, 2009

현주교를 보필하다 주교좌를 이으실 보좌주교(Bishop Coadjutor) 선출이
올해 3월에 있을 예정입니다.

아래는 주교후보 명단입니다.
좋은 주교님께서 선출되실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The Rev. Ronald G. Abrams
Rector, St. James, Wilmington, NC

현재 노스캘로라이나의 교인수 1,900 명 이상의 대형성공회 교회인 St. James의 주임사제.

- 롱아일랜드 대학교 졸업
- 버지니아 성공회 신학교 목회학 석사
- 영국 옥스퍼드 대학 안식년기간 공부

자세한 소개
http://www.bishopforlongisland.org/RonAbrams.htm

The Very Rev. Peter Eaton
Dean, St. John’s Cathedral, Denver, CO

현재 콜로라도 덴버 대성당의 Dean
프랑스, 영국등 다양한 규모와 장소에서 목회 경험

- 영국 킹스칼리지 졸업-신학과정
- 캠브리지대학 퀸즈칼리지 신학 학사 및 석사
- 캠브리지대학 Westcott House 수료
- 옥스퍼드대학 Magdalen College에서 기독교역사와 문학에 대한 연구

자세한 소개
http://www.bishopforlongisland.org/Peter%20Eaton.htm

The Rev. Dr. Titus Presler,
Sub-Dean, The General Theological Seminary, NYC

현재 맨한튼 General 성공회 신학대학 선교 컨설턴트
루터란, 로마카톨릭등 타교단과의 폭넓은 에큐메니칼 활동과 교류가 특징

- 하바드 대학 철학과 졸업
- 고든콘웰 신학교
- General 성공회 신학교 목회석사
- 하바드 대학 신학교 Fellow
- 성공회 Divinity 신학교 Fellow
- 보스턴 대학교, 선교및 신약학, 신학박사

자세한 소개
http://www.bishopforlongisland.org/Titus%20Presler.htm

The Rev. Lawrence Provenzano
Rector, St. Andrew’s, Longmeadow, MA

1995년 이후 현재까지 메사추세츠주의 St. John 의 주임사제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 중심가의 홈리스와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주민들 사이에서
‘벽이 없는 교회’라는 다민족 공동체 운동을 시작함.

- St. John Univ. 뉴욕.
- SUNY
- Christ the King 신학교

자세한 소개
http://www.bishopforlongisland.org/LawrenceProvenzano.htm

The Rev. Canon Petero Sabune,
Episcopal Chaplain, Sing Sing Correctional Facility, Ossining, NY

현재 뉴욕 Ossining 에 위치한 Sing Sing 교도소에서 사목중이며,
맨하튼의 St. John Divine, Trinity등 유서깊은 성공회 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한 경력이 있고,
뉴욕과 뉴저지의 교회들에서 목회활동이 풍부하다.

- 뉴욕 Vassar 칼리지 학사
- 뉴욕 유니온 신학교 목회학 석사

자세한 소개
http://www.bishopforlongisland.org/PeteroSabune.htm

The Rev. Caroline Stacey
Rector, St. Luke in the Fields, NYC

현재 뉴욕 맨하튼의 St. Luke 교회의 주임사제이자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CEO.
1년 총예산 7백만불, 39명의 교회직원과 43명의 학교직원을 관할하는 사제.
“Bloy as mentor” 등의 저서들이 있음.

- 예일 신학대학 목회학 석사
- 버지니아와 스코틀랜드의 St. Andrews Univ 에서 음악학 석사

http://www.bishopforlongisland.org/CarolineStacey.htm

지명후보:
The Rt. Rev. Johncy Itty,
Acting Director, George Mercer Jr. Memorial School of Theology, Garden City, NY

현재 롱아일랜드 교구 소속 Mercer 신학원의 임시 책임자.
오레곤 교구의 9번째 주교였으며, 전미교회연합회(NCC)의 Vice President를 역임.
사회와 인권에 관심이 많아, NGO 단체들과 UN등에서 폭넓은 활동을 했음.

- 뉴욕 CUNY, 컬럼비아 대학
- 뉴욕 신학대학
- CUNY로, PhD
- 뉴욕 General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자세한 소개
http://www.bishopforlongisland.org/JohncyItty.htm

2008 람베스회의에 참석하셨던 오카타리나 사제 인터뷰

Posted in 성공회 소식 by nychurch on September 17, 2008

2008 노동절 수양회

Posted in 1 by nychurch on September 15, 2008

주제 : 모이는 교회
2008년도 노동절 수양회가 Camp DeWolfe에서 있었습니다.


미국성공회 의장주교 캐서린 쇼리 취임 설교

Posted in 성공회 소식 by nychurch on December 2, 2006

취임식 설교 동영상 
취임후 첫예배 동영상 (Installation Service)

[이 설교는 주낙현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내용입니다]

캐서린 제퍼츠 쇼리 주교 (the Most Rev. Katharine Jefferts Schori, Presiding Bishop and Primate of the Episcopal Church)
2006년 11월 4일, 내셔널 캐시드럴, 워싱턴 D.C.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고향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네바다의 한 친구는 제가 그곳을 떠나기 직전, 제가 이제 거기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 고향이 오레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6년을 네바다에서 보냈고, 네바다는 고향이 되었습니다. 네바다 주의 노래 한 대목은 “고향은 네바다라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곳은 각처온 사람들로 가득 찬 곳입니다. 정말 놀랍게도 뿌리를 떠난 각지 각처의 사람들이 사막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도록 애쓰고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데스 모이네스, 아니면 앵커리지입니까? 대만 혹은 산 살바도르입니까? 아니면 포트 오 프린스입니까?

무엇이 고향을 만듭니까? 낯익은 풍경이나 삶의 모양새입니까? 아니면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부르는 여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향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말 그대로 그것이 쉬지 않는 여행을 뜻하든,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어떤 분을 따르는 “길”이라는 의미의 “호도스”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는 고향은 창조자와, 구원자와, 그리고 성령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 성인이 “우리의 마음은 오 주님 당신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까지 쉴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뜻은 우리의 본질적인 고향은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성서의 위대한 여정 이야기들은 에덴에 있는 우리의 고향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에 있는 새로운 고향을 찾아 참으로 오랜 동안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런 다음 포로에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을 시온 산에 끌어 모으는 고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아시야는 그 산 위에 펼쳐지는 감사 축제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세계 모든 이들이 초대받습니다. 이 비전은 하나의 보편적인 고향, 곧 모든 이들을 위한 고향을 건설하라는 선교 사명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천상의 잔치를 시작하시고, 그것을 성육신하신 사건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 기대지 않고, 하느님의 현존에 모여든 공동체 안에 있는 고향을 드러냅니다.

“어느 고용인의 죽음”(Death of the Hired Man)이라는 시집에서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향은 당신이 언제 어디든 그곳에 갔을 때, 당신을 받아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결점과 흠을 가지고 어떤 공동체에 들어갈 때, 우리를 받아주는 공동체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그 안에 들어오는 것을 여전히 축하해줍니다. 이 같은 고향 찾기와 고향으로 돌아가기에 대한 비전은 우리의 깊은 영적인 갈망의 근간이 되며, 동시에 세례를 통해서 우리 각자가 얻게 된 숙제입니다. 다시 말해 고향으로 가서, 그 안에서 머물며, 지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고향을 만들라는 숙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형제 자매들이, 돌아온 탕자처럼 고향 집에 다시 환영을 받아 돌아오지 않는 한, 우리 역시 하느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비전과 사명을 잘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히브리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샬롬”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의미에서 평화라는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샬롬은 모든 이들이 식탁에 초대받게 되어 어느 누구도 배고픔을 안고 살아가지 않는 세계에 대한 풍성한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이 치유를 받아 더이상 어느 누구도 병들거나 감옥에 갇혀 있지 않은 세계에 대한 비전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하느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을 펼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비전입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희생하는 대가로 자신의 풍요를 누리지 않는 세계에 대한 비전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누리는 안식을 즐기는 세계에 대한 비전입니다. 샬롬은 모든 인간들이 형제 자매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비전이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며, 또한 모든 창조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양들이 사자들과 어울려 지내며, 어린 아이가 독사 굴에 손넣고 장난치고, 죽음의 그림자가 더 이상 있을 곳을 찾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비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성서의 말씀이 듣는 너희들 안에서 이루어졌다”라고 말하시면서 가리키셨던 비전입니다. “샬롬”을 말하는 것은 우리의 처소를 깨닫는 것이며, 창조 세계의 모든 이들을 바로 다시 한번 하느님 안에 있는 고향으로 초대하고 그것을 모든 이들에게 확신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든 하느님의 창조물들을 초대하며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전 지구적인 평화 만들기라는 사목 활동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환영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모든 이들을 이 축제에 초대하여 하느님의 풍성함으로 채워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꿈을 우리 마음 속에 심어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신앙의 조상들과 신비가들을 통하여, 인간의 몸으로 사신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고 세례를 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그 꿈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이들을 초대하여, 모든 이들이 함께 먹고 배불러야 합니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창조의 사건 속에서 모든 상처들이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샬롬이라는 고향 찾기는 목적이자 여정이기도 합니다. 어디로 향할 지에 대한 비전이 없이 우리는 이 여정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장소들을 고향으로 보면서, 이 지구 상의 모든 창조물들과 참된 길을 따라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세계가 좋은 처지에 놓여 있지 않은 이상 우리는 고향에 다다를 수도, 샬롬을 향유할 수도 없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극빈자들과, 잊혀 지고 무시당하는 우리 여정의 동반자들을 위하여, 쫓겨난 이들, 위기에 처한 이들, 인생의 쉼없는 바다에 힘없이 떠다니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새천년 발전의 목표]라는 프로젝트 안에 새겨진 샬롬의 비전을 통해서 이러한 커다란 꿈들을 실천할 것이라 말해 왔습니다.  그 목표는 세계의 굶주리는 이들을 먹이고, 병든 이들을 치료하고, 젊은 이들을 교육하며,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대하고, 모든 이들이 깨끗한 물을 얻고, 정결한 위생 시설을 접할 수 있도록 하며,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제공하며, 창조 세계의 많은 이들이 더이상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성한 삶에 대한 비전은 우리 시대 안에 이룰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각자 이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할 때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류의 고향 찾기에 대한 하느님의 꿈입니다.

우리가 샬롬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 이웃의 건강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건강과 온전함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 어느 누구도 참되고 완벽한 존엄을 향유할 수 없습니다. 에페소서 기자는 평화의 연대 속에서 성령의 일치를 유지하라고 당부합니다. 하느님의 샬롬 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합니다. 이것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와 희망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원들이 샬롬을 누리지 못하며 우리는 하나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서 들은 이 하느님의 꿈, 이 하느님의 말씀은 지금 이것을 실현하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의 건강은, 넒은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교 사명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여 보다 온전하고 거룩한 삶의 상태도 이끌어 내지 않고서는,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최근의 결정들 때문에 어떤 이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구원과 한 몸으로 우리의 건강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것이며, 치유와 온전함을 찾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됩니다. 어린이들이 길 거리에서 살아가는 한, 노인들이 의료 혜택을 받을 돈이 없이 살아가는 한, 산업 폐기물들로 사람들이 병들어가는 한, 우리가 말하는 몸은 고통을 당하며, 우리 어느 누구도 고향에 다다랐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샬롬을 향한 지치지 않는 추구에서 우리를 떼어 놓는 것일까요? 여기엔 아마도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겠고, 그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무정함과 두려움입니다. 무정함이란 다른 이들의 고통을 알아보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행동을 위한 용기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를 위한 치료는 깊고 변함없는 희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오히려 속박하려는 것을 묶어 두고, 두려움을 잡아 두셨습니다. 그것은 희망의 해방과 번영을 위한 것입니다. 어거스틴 성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희망의 포로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무모하리 만치 단호한 희망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문을 가차없이 포격하는 희망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꿈이 죽음을 완전히 집어 삼킬 때까지 멈출 수 없는 희망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오늘 성서의 말씀이 이 말을 듣는 이들에게 이루어졌다”는 말씀에 용기있게 동참하는 희망입니다.

이제 성서의 말씀이 어떻게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신학적인 입장을 경멸하는 이들 – 이들 역시 신앙심에서 나온 것입니다만 – 과 평화를 이루려는 의지 속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빈곤을 지나간 역사로 만들려는 우리의 도전과 용기 속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를 위해 모금하고, 말라리아 모기를 방지하는 모기장을 공급하고, 모든 어린이들이 기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건설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그곳에 심으시는 꿈을 가로막은 어두운 세력에 전심을 다하여 대항하는 일을 통해서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관심을 넘어 서서, 서로를 고향으로 부를 때마다 그 성서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성서의 말씀은 크고 작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개인의 행동과 국민 전체의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일들을 찾아 나설 때, 우리의 고향 찾기는 바로 이러한 행동 안에서 그 끝을 찾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것을 누리도록 합시다. 회복된 창조 세계와 올바르게 회복된 관계의 비전 속에서 기뻐 뛰는 모든 생명의 군집들과 바다 생물들, 지상 생명체들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참여합시다.

성서의 말씀이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 안에서, 이 말씀을 실천하는 우리들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샬롬, 하베림,” 샬롬, 나의 친구들, 샬롬.

그리고 모든 청중들은 그들의 새로운 의장 주교에게 “샬롬”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