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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신부님

<내 기억 속의 신부님>.

지난 2007년 예수원에서 나온 책이름이다. 책은 예수원 설립자였던 고 대천덕 신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 놓고 있다.

대천덕 신부 5주기를 맞아 펴낸 책에는 1957년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온 미국인 선교사가 수도원 공동체 예수원을 설립하고, 평생을 산골짜기에 살며 보였던 모습이 담겨 있다.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대천덕 (Reuben Archer Torrey 3세). 1918년 1월19일,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출생한 대천덕 신부는 1957년 한국에 들어와 1940년 신사참배 반대 및 정치적인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됐던 聖미가엘 신학원을 재건한다. 1964년까지 그는 원장으로 봉직하며 학교를 안정시켜 놓는다.

그가 재건한 성 미가엘 신학원은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 추모 콘서트 ‘바람이 분다’를 열었던 지금의 성공회 대학교다.

성공회대 재건 후 태백에서 예수원 설립

1965년 그는 태백으로 들어가 예수원을 설립한다. 12명의 사람들과 함께 천막을 지어놓고 생활하며, 그가 구상했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구상했던 예수원은 실험실의 성격도 갖고 있었다. 그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실제적으로 현실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던 것. 그는 실험을 통해 성경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함께 하던 사람들이 떠나갔고 음식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다시 오고, 먹을 것이 생겨나며 그는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오직 성경적 원칙에 근거한 방법을 통해서.

지금은 예수원이 연간 1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한국의 대표적 공동체로 불러지고 있지만, 이를 위해 그는 쏟은 열정과 노력은 예수원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원을 자신의 절대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자청해 2선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며, 말년에는 설립자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사회의 불의와 교회의 잘못을 지적했던 대천덕 신부

토지문제는 그가 생전에 가장 중요시 여기며 강조했던 사안이었다. 사회의 불의와 교회의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하던 그는 경제 문제에 있어 토지의 중요성을 줄곧 이야기 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를 죄악이라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84세이던 2002년 8월 6일 대천덕 신부는 영면했지만 그의 정신과 자취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70~90년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산골짜기를 찾았고, 지금도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교회갱신과 토지정의를 외쳤던 그의 정신은 지금도 이 사회를 향한 외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내 기억 속의 대천덕 신부님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신부

 

<내 기억 속의 신부님>에 담긴 대천덕 신부님의 모습은 평범한 할아버지에서부터 영성 있는 목회자, 진보적 경제학자 등 다양하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을 만큼 그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한다. 언제나 순수하게 낮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상대했던 대천덕 신부님의 모습을.

절대 땅 투기 안 합니다.

대 신부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말씀 중 특별히 마음 속 깊이 새겨진 말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말씀은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여러분 땅 투기 하면 안 됩니다. 토지개혁을 실천한 나라가 잘 살게 됐습니다.”

두 번째 말씀은 “성경에 고아원 양로원 세웠다는 말씀없습니다. 고아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돌보고 도와줘야 합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실험실입니다.”

대 신부님의 말씀을 들은 지 2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도록 이끄셨다. 기회도 있었고 주위에서 설득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 신부님, 절대로 땅 투기 안합니다!’ 이옥연 / 목사 사모

정의와 종교는 분리되지 않는다

대 신부님께서 펴내신 책<토지와 자유-성서의 경제학>을 읽었다. 대 신부님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좋은 목적을 같이 나누고 싶기도 해서 혹시나 하고 편지를 한번 보내 보았는데, 예기치 않게 프레드 해리슨의 토지의 힘 복사본과 함께 답장(1985.4.20)을 보내 주셨다. 대 신부님이 구술하시고 누군가 대필한 편지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사실 성경에서 그대로 읽기만 하면 사회질서와 정의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얘기했듯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세력 잡은 이들이 이런 것을 가르치지 말고 영적인 해석을 하자고 하여 성경의 가르침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또 일반 신학교에 가면 현대 사회 문제를 볼 때 그렇게 된 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이 아직 성경 말씀대로 믿습니다.”

토씨 구사와 표현이 다소간 어색한 서양인 특유의 말씨였지만 정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김윤상 / 경북대 교수

“부처님 생일 축하합시다!”

주일 미사 설교시간이었다. 신부님께서 설교 첫 말씀을 이렇게 하시는 것이었다.

“오늘은 부처님 태어나신 날입니다. 생일 축하합시다.”

아니 이게 무슨말? 나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저런 말씀을… 신부님께서 말씀을 다 마치고 나서도 내게는 그 첫 말씀이 뇌리에 남았다.

그런데 왜 자꾸 나는 그런 신부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그 분의 포용력을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나도 그런 마음을 소유하고 싶다. 신현민 / 예수원 회원

 

초기 예수원 가족들과 함깨. 왼쪽에서 두번째가 대천덕 신부

 

대 신부님 통해 연구자로 운동가로

나는 신부님을 1991년 12월에 만났다. 몇 가정과 함께 예수원을 방문했는데, 신부님께서는 몸이 편찮으신 중에도 우리를 댁으로 초대하셔서 다과를 대접해 주셨다. 우리 중 몇 사람이 경제학을 전공한다는 것을 아시고 기뻐하시며 서재에서 두꺼운 책 몇 권을 갖고 나오셔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 책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영문판이었다.

나는 그 때 그 책이 얼마나 귀중한 책인지 모르고 집에 돌아와서 책꽂이에 그냥 꽂아 두었다. 그 후 성경적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진보와 빈곤을 열심히 읽었고 이제 헨리 조지의 경제학을 연구하는 연구자, 그의 대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가 되었다. 전강수 / 대구 카톨릭대 교수

“저는 아직도 예쁜 여자를 조심합니다.”

한 청년이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가 예수원을 찾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신부님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신부님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청년은 감사한 마음으로 상담에 임했다. 최근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말씀드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저는 아직도 예쁜 여자를 조심합니다.”

당시 신부님은 여든이 넘은 나이였다. 이금수 / 예수원 회원

“식사 시간에는 불러 주시오!”

예수원에서 몇 차례 호칭문제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결론은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 안에 비성경적인 계급 정신을 깨뜨리고 형제적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성직자를 포함해 모두를 ‘형제자매’로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직임이나 나이를 떠나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되 그리스도 안에 한 지체로서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처음 이 것을 시행할 때는 우리 문화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인지라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대 신부님을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 하는 것이 뜨거운 감자였다. 평소에 공동 결정에 철저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던 신부님은 우리가 ‘신부님’이라고 부르면 못 들은 척하시기도 했고, 어느 날 부터는 가슴에 ‘아처 형제’라고 이름표를 달고 다니며 자신을 그렇게 부르도록 요구하시면서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셨다.

형제 자매라고 호칭한지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때로 손님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고, 우리 안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서 한 형제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면서 질문을 하자, 신부님을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미국에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나를 형제라고 불러도 좋고, 신부라고 불러도 좋은데… 아무튼 식사시간에는 꼭 불러 주시오!”
“…..”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타협이 없었지만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많았던 신부님 아니 아처 형제님의 유머가 그리워진다. 권요셉 / 예수원 회원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타협하지 않으셨던 분

99년 심장병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두 달간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실 때 주치의이셨던 린튼 박사님께 고단백음식을 섭취하셔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받으셨습니다. 저도 린튼 박사님으로부터 전화상으로 직접 주의하여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양질의 영양 섭취를 위해 예수원의 주방장을 비롯해 관계된 부서의 여러 형제자매들이 머리를 짜내며 고심했습니다. 일단 집에서 식사하시도록 하고 식사는 몇 명이 순번제로 돌아가며 섬겨드렸습니다. 예수원 공동체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갖다 드리면 신부님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얼마쯤 그러시다가, 신부님이 이제 식사를 그만 가져오라고 공동식사를 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운신을 하실 만하니까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는 것이었지요. 이 때부터는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공동식사에 나오셔서야 비로서 신부님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신부님의 밥에 고기를 깔고 그 위에 밥을 얹어드렸는데, 고기를 당신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시고 당신은 몇 점만 드실 뿐이었습니다. 정말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타협하지 않으신 분이셨습니다. 유테레사 / 성공회 사제

예수원에 있는 대천적 신부님의 작은 묘비

 

그의 생전에 예수원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고, 그를 찾는 사람 중에는 대천덕 신부의 제자가 되겠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예수원에 나를 보러오지 말라. 나는 볼 것이 없는 사람이다. 오직 예수님을 만나러 와라. 그리고 내게는 제자가 없다. 대천덕의 제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

하나님 나라의 개척자 대천덕 신부. 그의 7주기를 맞는 오늘 그의 정신이 한국 교회에 널리 퍼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미국 성공회는 지난 7월에 열린 제너럴 컨벤션에서 ‘발견주의 원칙’과의 단절을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발견주의 원칙이란, 쉽게 말해서 먼저 발결한 사람이 임자라는 뜻이다.

이 원칙과 결별했다는 것은 제법 큰 파장을 일으켰다.
왜냐면, 이 원칙은 미국의 보이지 않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자신들이 발견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땅이라 여겼고, 그 땅의 원주민들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을 노예로 소유하기 까지 했다.
모두 발견주의 원칙에 입각한 행위였다.

게다가,  미국 성공회가 이 발견주의 원칙과의 결별(‘Repudiation of Doctrine of Discovery’) 을 선언한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 했다.

“발견주의 원칙과 결별하는 것은 그것이 복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발견주의 원칙과 그에 따라 지난 500년간 착취당해온 아프리카와 신대륙의 원주민들에게
이제야 ‘복음’이 전해진 것만 같다.

가장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경험, 우리의 지혜입니다
‘바퀴를 다시 발명하려 들지 말라’라는 격언이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참 어리석어서, 앞 세대의 전철을 그대로 되밟습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않는다는 교훈을 역사로부터 얻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지금 저커먼 당신이 하는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경험, 우리의 지혜, 나이든 세대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전통 마을에는 항상 장로라 불리는 어르신들이 있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더 이상 건장하지 않아 힘든 일은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분들이 경험과 지혜의 보고(寶庫)라고 생각해 그분들을 공경했습니다. 그분들도 그 경험과 지혜를 다음 세대와 공유하기 바랐습니다. 그분들은 젊은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다툼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다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립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화가 나면 받은 만큼 되갚고 싶고, 그래서는 문제를 풀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도 화가 나서 그대로 되갚으려 할 테니, 문제가 더 악화될 수밖에요. 부드러운 답변이 분노를 가라앉힙니다. 어르신들은 삶을 너무나 깊이, 열렬하게 사랑하는 만큼이나 손아래 세대를 깊이, 열렬하게 사랑합니다. 손아래 세대가 번창하기를 바라고, 그래서 말씀들을 하십니다. 우리가 오래 오래 살면서 겪어 보니, 너그러움과 동정심과 부드러움과 아끼는 마음이 그 반대 것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걸 알겠더라고.
화를 다룰 때는 자신에 대해 화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떨 땐 자기가 화를 냈다는 사실에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화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환영할 것이기도 합니다. 아동학대 광경을 보고도 “괜찮아, 문제없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한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화를 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화란 그런 데 쓰는 것입니다. 그 반응이 우리 안에 일으키는 에너지를 조절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으로도, 파괴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 사람이 나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해서 나는 화가 났어. 화가 났지만, 이 화를 다른 사람들이 권리를 침해당하는 일이 없게 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데 쓸래.’ 순간 화가 날 때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이 이것입니다. 상대를 비인격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상대를 악으로 치부하기를 삼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늘 염두에 두고, 그 인간성에 호소해야 합니다. 군인에게 적군을 죽이기 쉽도록 만드는 훈련 중 하나는, 적군을 일반인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군인은 대개 적군을 비하하고 비인격화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그 또한 하느님의 자녀이며,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느님은 쓰레기를 창조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바로 가장 멋진 인간입니다. 기억하세요.
교통체증에 걸려 서있으면 대개는 안달복달 화내고 안절부절못하고 답답해 하고, 얌체 운전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더 긍정적인 것을 시도할 수는 없을까요? 자기가 평화의 오아시스라고 상상하고, 그 평화의 중심에서 잔물결이 퍼져 나가 다른 사람들을 어루만진다고 상상하는 겁니다. 이런 종류의 고요와 평화의 오아시스가 더 많이 있다면 놀라울 겁니다. 체증에 걸려 혈압이 올라가기는커녕 깊이,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좋은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손자놈이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할아버지, 지금 좋은 생각 하세요?” 무슨 못된 짓을 하고서 그걸 어떻게 감추려고 할 때 “할아버지, 지금 좋은 생각 하세요?” 하는 겁니다. 사실은 못된 짓을 실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아이는 모르지요. 좋은 생각을 함으로써 우리 태도에 정말로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차분할수록 신진대사에도 좋으니까요. 화가 나기 시작하면 우리 몸은 도망치거나 싸울 준비를 하게 되고, 그러면 신진대사가 영향을 받아 위장으로 내려갈 것들이 혈관으로 흘러들어 가고, 다시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하게 됩니다.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정반대 일이 일어나, 유연함이 우리를 감싸 줍니다. 일반으로 우리 대부분은 서두르거나 화나 있을 때보다 서두르지 않을 때, 답답하지 않을 때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뭔가 엄청나 보이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 바다가 사실은 물방울들이 모여 이뤄진 것이어서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다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 각자가 자기가 속한 자리에서 우리의 작은 몫을 하고, 그 작은 몫들이 모여서 온 세상을 뒤덮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화의 사도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평화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섬김입니다.
성공적인 관계의 비밀은,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농담이고요. 비결은, 사실은 누누이 들은 당연한 얘기들입니다. 같이 살다 보면 상대방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기 아주 쉽거든요. 결혼 초기에 많이 듣고 책에서도 읽은 말이, 간단한 말들입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해줄 수 있어?”, “고마워” 같은 말입니다. 결혼에서는 로맨스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요. 작은 선물,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 작은 호의, 신사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하기, 문 열어 주기, 자리 내주기, 이런 것들이지요. 그리고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 같은 이상과,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공유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요. 사람들은 내가 정치적으로 과격하다고들 하는데, 과격하기로는 나는 아내하고는 비교도 안 됩니다. 아내는 불의를 보면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입니다. 관계에서 또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누구라도 늘 사랑받고 확인받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한 일, 좋은 일을 서로 얘기해 주라는 겁니다. “정말 맛있었어”, “옷 예쁜데!”, “그렇고말고”, “오늘 설교 좋았어” 같은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확인받고 싶어 하는지 알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확인받으면 사람은 피어나고, 그게 없으면 시듭니다. 나는 아주, 아주, 아주 복에 겨운 사람입니다. 아파르트헤이드 정권이 나를 탄압할 때 일입니다. 장관 하나가 “투투 주교는 말이 너무 많아” 했어요.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내가 잠잠하면 좋겠소?” “그러느니 차라리 당신이 로벤아일랜드(중죄인이 가는 형무소)에서 행복해 하는 걸 보겠소.” 아내로부터 받은 긍정과 용기를 나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그녀를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행복이란 다른 사람이 행복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행복은 나눔입니다. 나 혼자만 즐기면 행복이 팍팍 줄어드는 기분입니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을 주고서 그 얼굴이 기쁨에 빛나는 것을 보는 것, 주는 사람인 나에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보기에는 주는 것 같아도, 사실은 받는 것이니까요. 나에게 행복이란, 다른 사람이 행복한 것을 볼 때 생기는 그 느낌입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섬기세요. 행복과 성공의 확실한 레시피는 남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데스몬드 투투 – 성공회 명예대주교, 노벨 평화상 수상
193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
교사로 일하다가 1960년 사제 서품, 1975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 세인트메리 대성당의 주교가 되고 이후 레소토 주교,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 총무, 케이프타운 대주교, 남아프리카 관구 대주교를 거쳤다. 1980년대 반(反)아파르트헤이드 활동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1984년 노벨 평화상, 2007년 간디 평화상을 받았다. 앤드루 저커먼의 ‘위즈덤 프로젝트’를 위한 명사들의 연쇄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미국성공회가 성공회 성직자와 교인 3,000명에게 물었습니다.
성공회교인인 “우리는 누구인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그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그에 따라 성공회 교인들은 스스로에 대해 다음 4가지의 핵심 가치가 있음을 인식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성공회의 정체성을  4단계로 나누어,  성공회가 가지는 가치들의 선호도와 중요도를 분류하게 되었습니다.
즉 핵심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2차를 그 다음으로, 3차는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식입니다.
90%의 성공회 교인들이 성공회를 핵심분류를 가장 중요한 성공회 정체성으로 꼽았습니다.

핵심 정체성 분류(Core Identity Themes):
그리스도 중심(Christ as Central) - 성사(Sacramental) – 공동문(BCP) – 성육신(Incarnational) – 성서(Scriptural) – 사목(Pastoral)

2차 정체성 분류(Secondary Identity Themes):
이성(Reason) – 포용(Inclusive) – 전통(Tradition) - 공통전례(Common Liturgy) - 예식(Ceremonial) – 경험(Experience) –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Responsiveness to Social Change)

3차 정체성 분류:

중용(Middle Way) - 다양한 신학적 견해들(Diverse Theological Positions) - 에큐메니칼(Ecumenical) - 다양한 영성 훈련(Diverse Spritual Practices) - 예언(Prophetic) – 사회 변화의 근원(Source of Societal Change) - 권위분배(Dispersed Authority)

예외적 정체성 분류(Stand-Alone Identity Themes)
엘리트(Elite)- 구원의 근원(Source of Salvation) - 고백(A-Confessional)

핵심을 이루는 내용들을 볼 때, 성공회가 얼마나 그리스도 중심의 균형을 추구하는 교회인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더 자세한 보고서는 영문으로 아래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Around One Table:
http://episcopalchurch.org/aroundonetable/

또한 미국성공회교인들의 정체성 찾기를 위해 새롭게 오픈한 사이트도 눈에 띕니다.
I Am Episcopal
http://www.iamepiscopalian.org/

작지만 매우 중요한 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롱아일랜드 주교 서품식 동영상입니다.
서품식에 못오셨던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특별히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투투대주교의 손녀인 여성사제의 설교(Part2의 3:55 부분)와 서품받으실때(Part3의 0:55부분)가  무척 감명깊습니다.

Part 1)

Part2)

Part3)

아름다운 음성으로 유명한 영국의 LIBERA입니다. 영국의 작은 성공회교회의 소년성가대가 그 시작으로, 오늘날은 전세계인들로 부터 사랑받는 소년합창단으로 성장했습니다.
Rest in peace라는 곡은 아름다운 선율과 놀랍도록 깊은 의미의 가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슬픔가운데 계신 분들께 이 성가가 큰 위로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REST IN PEACE


For all who need comfort for all those who mourn
all those whom we cherished will be reborn
All those whom we love but see no more
they are not perished, but gone before
and lie in the tender arms of he who died for us all to set us free
from hatred and anger and cruel tyranny
may they rest in peace – and rise in glory

All suffering and sorrow will be no more
they’ll vanish like shadows at heaven’s door
All anguish and grieving will one day be healed
when all of God’s purpose will be revealed.
Though now for a season lost from sight
the innocent slain in the blindness of ‘right’
are now in the warmth of God’s glorious light
where they rest in peace – and rise in glory

Lord give me wisdom to comprehend why I survive and not my friend
and teach me compassion so I may live, all my enemies to forgive
For all who need comfort for all those who mourn
all those whom we cherished will be reborn
All those whom we love but see no more
they are not perished but gone before
And Lord keep them safe in your embrace
and fill their souls with your good grace
for now they see you face to face
where they rest in peace – and rise in glory

금요묵상 공지

7월 17일(금)부터 청년부인 성프란시스회와 함께
금요일 아침 7 시에 본당에서 아침묵상기도가 있습니다.
형식은 때제 혹은 그레고리안 찬트와, 렉시오 디비나, 그리고 관상기도입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09년 6월 14일(주일) 저녁 7시
뉴욕한인성공회 성당에서
밀알합창단에서 주최하는 무료연주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이 나라의 모든 국민들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마음 깊이 애도합니다.

지금 우리는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분함으로 그분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모든 제도가 사람의 사람다움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분의 신념과 노고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고인께서 겪고 있었을 외로움과 아픔을 멀찍이 떨어져 방관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한 인간을 몰아가 결국 죽음의 언덕에서 밀어 떨어뜨린 어둡고 거대한 세력들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언제나 죽음은 남겨질 사람들에게 새로운 몫을 선사합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는 시작이고, 보다 성숙한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출발이라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한다는 것은 순간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가 지녔던 바른 신념과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이어받아 사는 것입니다.

참 세상을 향한 그분의 소망이 남겨진 우리들의 삶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 이어져가기를 빌며,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평화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9. 5. 27

대 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The Reverend Lawrence C. Provenzano


롱아일랜드 신임 주교로 선출되신 로렌스주교입니다.
9월에 승좌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대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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